은퇴의비밀

은퇴하고 떠난 첫 여행, '혼자' 였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던 이유

hola-news 2025. 7. 10. 08:30

 

퇴직을 한 뒤 첫 주에는 늦잠이 달콤했고, 두 번째 주에는 산책이 즐거웠지만, 세 번째 주부터는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허전해졌다. 바쁘게 일하며 살아온 시간에는 몰랐던 정적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자유 속에서 무게감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때 문득 ‘여행을 떠나보자’는 생각이 스쳤다.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누구도 내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시기. 지금이 아니면 오히려 다시는 이런 시간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혼자 떠난다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과 함께 했던 여행은 익숙하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낯설고 약간 두려운 일이었다. 내가 아플 때는? 길을 잃으면? 외로워지면?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순간 두려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떠나기로 했다. 은퇴 후 첫 여행, 혼자서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맞는 선택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작은 배낭 하나와 가벼운 마음을 안고, 인천에서 출발하는 저가항공을 타고 제주로 향했다.
이 글은 그 여행에서 느낀 것들, 혼자였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던 이유들, 그리고 은퇴 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혼자 여행’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직 떠나지 못한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은퇴하고 떠난 첫 여행, '혼자' 였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던 이유

 

 

은퇴 후 혼자라서 가능한 느린 여행의 발견

혼자 여행을 하며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시간이 내 편이 되었다’는 감각이었다. 누구와 약속할 필요도 없고, 일정에 쫓길 일도 없었다. 원한다면 카페에 한 시간을 앉아 있을 수도 있고, 해안도로를 하루 종일 걸어도 그만이었다. 이 자유로움은 단체여행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주에서 내가 처음 간 곳은 성산읍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관광지 중심이 아닌, 조용한 동네 골목 안에 있는 숙소를 선택한 건 사람보다 바다가 더 많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매우 단순했다. 아침엔 직접 만든 커피를 들고 바다로 나가고, 낮에는 걷고, 오후엔 작은 책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나를 위해 식사를 차렸다. 그렇게 보낸 하루는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흘렀다.

혼자 있었지만, 외롭다는 감정은 이상하리만큼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함 속의 충만함’이랄까. 두려움도 사라졌다. 주변에 말 걸 사람은 없지만, 그 덕분에 내 생각과 감정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동안 직장과 가족에게 집중하느라 미뤄두었던 내 감정들을, 제주 바다 앞에서 천천히 되짚어보게 된 것이다.

‘혼자’라는 말은 종종 ‘비어 있음’의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은 ‘내가 중심에 서 있는 상태’ 일 수도 있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시간의 질감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감정적 토대가 되었다.

 

 

예상 밖의 만남, 낯선 사람들과의 따뜻한 연결

혼자 여행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없이 지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여행지에는 이상할 정도로 ‘대화에 열려 있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혼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과 더 쉽게 연결될 수 있었고, 말 한 마디의 따뜻함이 더 깊이 다가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자는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은퇴자였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퇴직 후 혼자 제주로 왔다고 했다. 저녁식사 후 함께 나눈 맥주 한 잔은, 어느 모임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깊은 공감의 시간을 만들어줬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직장에서의 기억, 은퇴 후의 계획, 부모로서의 역할, 혼자라는 감각에 대한 솔직한 감정까지.

또한 내가 매일 갔던 작은 책방의 주인은 나에게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관광지로서가 아니라, 생활공간으로서의 제주. 그녀는 제주의 슬로라이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작은 산책 지도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가이드북에 없는, 나만의 여행 동선을 걷게 되었다.

혼자였기에 가능한 만남들이 있었다. 여럿이서 왔다면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사람들과의 교류. 그 만남 속에서 나는 ‘외로움’ 대신 ‘연결됨’을 느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삶의 중심에 다시 인간관계를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해주었다.

 

 

은퇴자의 혼자 여행, 삶의 전환점이 되다

혼자 떠난 여행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이 아니었다.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계기이자, 심리적 재구성의 과정이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즉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여행 중 어느 날, 나는 노트북을 켜고 '앞으로 10년 계획'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열었다. 은퇴 후엔 계획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은퇴 후야말로 더욱 명확한 방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계획의 시작에는 반드시 '혼자서도 괜찮다'는 감정적 안정감이 있어야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경험하고, 그것을 소화하는 과정은 은퇴자의 정서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삶의 중심을 잃지 않게 된다.

특히 남성 은퇴자들은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면서 급격히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 여행하며 고립이 아닌 ‘고요’를 경험한 순간, 나는 외로움이 아니라, 두려움도 아닌 독립성을 얻었다. 이것은 어떤 강의나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현장 체험’이었다.

 

 

은퇴 후 혼자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실용 가이드

혼자 떠나는 여행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나는 지금도 1년에 2~3번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자들이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계획할 때 참고할 수 있는 5가지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너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국내 소도시부터 시작하자. 제주, 전주, 군산, 속초 등은 교통이 편하고, 혼자 머물기 좋은 게스트하우스나 한달살이 숙소가 많다.

일정은 느슨하게, 계획은 단순하게
시간을 여유 있게 두고, 1일 1~2곳만 방문하는 일정이 좋다. 혼자일수록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록을 남겨보자
블로그, 노트, 스마트폰 메모앱 등 어떤 방식이든 여행을 기록해보자. 하루에 한 문장만 적어도 여행의 감정이 더 깊어진다.

가볍게 대화를 시도해보자
식당 주인, 카페 직원, 숙소 관리자 등과 짧은 대화를 시도해 보자. 대화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말 한마디는 관계의 시작이 된다.

내 감정에 귀 기울이기
혼자 있으면 감정이 더 섬세하게 다가온다. 외로움, 두려움, 설렘, 감동… 그 모든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그게 여행의 진짜 가치다.

 

은퇴 후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시간에 주인이 되고, 삶에 주인이되어 오늘 혼자만의 여행을 도전해 보자.